마이클 (전기영화, 자파르 잭슨, 문워크)

전기 영화(biographical film)란 실존 인물의 삶을 재구성한 극영화를 말합니다. 마이클 잭슨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흥행이 보장될 것 같은 전기 영화가, 오히려 그 이름에 먹칠을 할 수 있다는 게 상상이나 되셨나요? 저도 예매 버튼을 누르는 순간만 해도 전혀 그런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극장을 나오면서, 친구와 함께 "이럴 거면 코인노래방 가서 마이클 잭슨 노래나 부를 걸 그랬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무대에서 화려한 포즈로 공연하는 마이클잭슨 공식 포스터 사진
영화 마이클 공식포스터


전기 영화의 치트키, 마이클 잭슨이라면 통할 것 같지 않았나요?

솔직히 음악 전기 영화는 반쯤 치트키나 다름없는 장르입니다. 관객이 이미 사랑하는 음악을 빵빵한 극장 사운드로 들려주기만 해도 절반은 먹고 들어가거든요. 실제로 2018년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가 딱 그랬습니다. 퀸(Queen)의 결성부터 1985년 라이브 에이드(Live Aid) 무대까지를 다룬 이 영화는 극 중 완성도에 대한 평단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9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습니다. 팬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고 싶어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한 흥행 동력이 됩니다.

그렇다면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라면 어떨까요? 저는 시험이 끝난 직후 친구와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는데, 마침 SNS 광고에서 마이클 잭슨 영화를 보고 냉큼 예매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마이클 잭슨 전성기 세대가 아닙니다. 그래도 틱톡과 유튜브 숏폼에서 문워크 영상은 하도 많이 봐서 노래 몇 곡은 알고 있었고, 이 정도 아티스트면 영화가 최소 기본은 하겠거니 싶었습니다. 팝콘도 큰 것으로 하나 샀습니다. 그 팝콘을 다 먹고 나서 제가 느낀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는, 뒤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자파르 잭슨, 불가능한 임무를 맡은 배우

성인 마이클 잭슨 역은 실제 마이클 잭슨의 조카인 자파르 잭슨(Jafaar Jackson)이 맡았습니다. 캐스팅 자체는 화제가 됐지만, 제가 직접 스크린에서 그를 보고 나니 안타까움이 앞섰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보컬 모사(vocal mimicry), 즉 실제 인물의 말투와 목소리를 따라 하는 연기 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점입니다. 자파르 잭슨은 삼촌 특유의 가는 가성(falsetto, 성대를 강하게 조여 내는 고음 창법)으로 대사를 치는 데 집착한 나머지, 감정이 전달되어야 할 순간에도 목소리가 감정을 앞질러버렸습니다.

그나마 아버지와 단둘이 마주하는 조용한 장면에서는 섬세한 감정선이 살짝 비치기도 합니다. 제가 그 장면을 볼 때만큼은 팝콘 집는 손을 멈췄으니까요. 문제는 연출입니다. 대사 장면의 편집이 너무 어설펐는데, 얼굴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먼 거리 화면이나 뒤통수만 나오는 쇼트(shot, 카메라가 한 번에 끊기지 않고 촬영하는 단위 장면)에 후시 녹음(ADR, Automated Dialogue Replacement, 촬영 후 스튜디오에서 따로 녹음한 대사를 덧입히는 작업)으로 입힌 대사가 어색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배우가 표정으로 무언가를 말하려 해도, 카메라가 그 표정을 잡아주지 않으니 연기가 공중에 떠버리는 꼴이었습니다.

한편, 아버지 조 잭슨(Joe Jackson) 역을 맡은 콜먼 도밍고(Colman Domingo)는 과도한 특수 분장 탓에 오히려 표정이 굳어버렸습니다. 분장이 얼마나 두껍게 얹혔는지, 저는 무서운 아버지가 아니라 만화 속 삼류 악당처럼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실소가 나왔다고 해야 할까요.

문워크조차 졸렸던 이유, 연출의 문제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기대했던 장면은 단연 '빌리 진(Billie Jean)' 무대였습니다. 1983년, 마이클 잭슨이 TV 특집 방송에서 처음으로 문워크(moonwalk, 앞으로 나아가는 듯 보이면서 실제로는 뒤로 미끄러지는 것처럼 보이는 댄스 기술)를 선보인 역사적인 장면입니다. 저는 실제로 소름 돋을 준비를 하고 의자에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그런데 카메라는 그 전설적인 무대를 멀리서, 마치 나중에 동선을 확인하려고 대충 찍어둔 리허설 영상처럼 담아냈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와 카메라 구도를 총칭하는 연출 용어)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예 없었습니다. 제 옆자리 아저씨는 어느새 헤드뱅잉을 하고 계셨고, 친구는 대놓고 스마트폰을 꺼내서 카톡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팝콘 먹는 소리가 상영관에서 가장 극적인 소리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앤트완 퓨콰(Antoine Fuqua) 감독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무대 연출과, 바즈 루어만(Baz Luhrmann) 감독이 영화 '엘비스(Elvis)'에서 보여준 것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명확합니다.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순간은 '비트 잇(Beat It)'의 탄생 과정을 다루는 장면뿐이었습니다. 이 곡이 왜 만들어졌는지, 마이클 잭슨이 흑인 음악 문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짚어주는 그 짧은 장면만큼은 '아, 이런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영화는 다시 시간순 나열로 돌아갔습니다.

알맹이가 빠진 전기 영화, 왜 이렇게 됐을까

영화를 보고 나서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잭슨 재단 측이 아동 성추행 의혹과 법정 공방을 다루는 서사를 대본에서 전면 제거하도록 요구했고, 이 때문에 제작 후반에 대규모 재촬영(reshooting)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재촬영이란 영화의 방향이 바뀌었을 때 이미 찍은 장면을 다시 촬영하는 과정으로,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됩니다. 원래 이 논란들이 영화의 핵심 서사를 이끌어가는 갈등축이었다고 하니, 그 뼈대를 빼버린 지금의 영화가 왜 이토록 공허하게 느껴지는지 납득이 됐습니다.

그 결과 지금 스크린에 걸린 '마이클'이 보여주는 것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잭슨 파이브(Jackson 5) 결성기부터 시작해 히트곡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는 교과서식 전개
  2. 화면에 연도가 뜨면 5분짜리 무대 장면이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패턴
  3. 마이클의 외모 콤플렉스나 백반증(vitiligo, 피부의 멜라닌 색소가 소실되어 피부가 하얗게 탈색되는 질환) 같은 민감한 문제는 대화 중 가십처럼 스쳐 지나가는 방식
  4. MTV의 흑인 아티스트 뮤직비디오 방영 거부 같은 사회적 갈등도 허탈할 만큼 쉽게 해소되는 전개

이처럼 갈등이 모조리 증발해버린 자리에 남은 것은, 기부를 좋아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한없이 착한 마이클 잭슨의 이미지뿐입니다. 마이클 잭슨이라는 인물을 지지하든 비판하든, 그가 단순히 착한 사람이 아니라 복잡하고 모순적인 존재였다는 점만큼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 복잡성이야말로 그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인데, 영화는 그것을 전부 지워버렸습니다. 제가 극장을 나오며 느낀 건 감동도, 카타르시스도 아니라 그냥 허리 통증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굳이 극장에서 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 듣고 싶다면 마이클 잭슨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실제 무대 영상을 보시는 게 훨씬 낫습니다. 적어도 거기서는 문워크를 보며 절대로 졸 일이 없으니까요. 마이클 잭슨의 진짜 에너지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영화관 티켓값을 아끼고 실제 공연 영상을 찾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것이 이 팝의 황제를 더 잘 이해하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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