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운드

 

유튜브 알고리즘이 떠먹여준 영상 하나 때문에 영화관까지 가게 된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랬습니다. 고등학교 농구부가 다섯 명으로 전국대회를 나갔다는 말 한 마디에, 그게 말이 되나 싶어서 찾아봤다가 결국 끝까지 봤습니다. 2012년 부산 중앙고등학교 농구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리바운드입니다. 뻔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보다 보면 생각보다 깊이 빠져듭니다.

영화 리바운드의 농구공을 중심으로 배우들이 리바운드 하는 공식포스터
영화 리바운드 공식포스터


배경: 기적이라 불리기까지

실화 기반 스포츠 영화에서 중요한 건 '이게 진짜 있었던 일이냐'는 신뢰감입니다. 리바운드는 이 부분을 꽤 효과적으로 처리합니다. 부산 중앙고는 교체 선수 없이 단 다섯 명으로 네 경기를 소화하며 전국 최강 팀들을 연달아 꺾었습니다. 농구에서 로테이션(rotation), 즉 체력 안배를 위해 선수를 교체해가며 경기를 운영하는 전략은 거의 필수입니다. 그 로테이션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에서 60분 풀타임을 버텼다는 건, 수치로만 봐도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영화는 그 믿기 어려운 일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코치 강양현의 시선으로 따라갑니다. 팀은 해체 직전이고, 강양현은 적당한 명분과 적당한 가성비로 낙점된 인물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데, 처음 30분이 솔직히 좀 늘어집니다. 코치가 선수를 한 명씩 모으러 다니는 장면이 반복되거든요. 그런데 그 반복 자체가 나중에 의미를 가집니다. 각 선수의 사연이 조각조각 쌓이면서, 나중에 경기를 볼 때 감정이 실리는 방식입니다.

선수 구성도 흥미롭습니다. 농구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학생, 7년간 출전 기록 없는 만년 후보, 슬럼프에 빠진 전국대회 MVP 출신, 그리고 싸움이 특기인 스트리트 파이터까지. 이런 조합이 어떻게 팀이 되는가가 영화 전반부의 핵심입니다. 실화라는 사실이 없었다면 설정 자체가 너무 작위적이라고 느꼈을 것 같습니다.

캐릭터: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만드는 이야기

리바운드에서 저는 코치 강양현 캐릭터를 가장 오래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솔직히 별로였습니다. 모든 공격을 한준영 한 명에게 몰아주는 몰빵 전술, 그러니까 팀 전체가 에이스 한 명의 볼보이가 되어야 한다는 방식을 강요하면서 선수들 의견은 싹 무시합니다. 선수가 "공격 루트가 단순하면 준영이만 집중 마크당할 겁니다"라고 하자, "아무 생각하지 마"라고 잘라버립니다.

이 장면을 두고 보는 시각이 갈릴 수 있습니다. 약팀이 강팀을 이기려면 최고의 카드를 극단적으로 활용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는 현실적 판단이라는 시각이 있는 반면, 선수들의 자율성과 팀워크를 무시한 독단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에 가까웠지만, 영화는 두 시각 모두 틀리지 않았음을 첫 경기 결과로 보여줍니다.

첫 경기에서 팀은 처참하게 집니다. 기범이가 혼자 드리블하다 공을 뺏기고, 코치는 벤치에서 소리 지르고, 팀원끼리 감정이 터집니다. 보면서 저도 모르게 "아 저러면 안 되는데"라고 중얼거렸더니 옆에 있던 동생이 왜 혼잣말 하냐고 했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답답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그 답답함이 포인트입니다. 보통 스포츠 영화라면 첫 경기에서 뭔가 희망의 씨앗이라도 보여주는데, 리바운드는 그냥 지게 둡니다.

패배 이후 강양현이 예전 우승 당시 인터뷰 영상을 혼자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대단한 연출이 아닙니다. 그냥 TV 화면을 보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런 설명 없는 장면이 오히려 더 오래 남습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하려 했는지가 말 없이 전달되는 순간입니다.

선수들의 변화도 비슷한 방식으로 그려집니다. 갑자기 사이가 좋아지거나 각성하지 않습니다. 으르렁거리다가 주먹질 직전까지 가고, 억지로 같이 있다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영화 속에서 팀워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첫 만남: 서로 배경도, 실력도 다른 선수들이 억지로 같은 공간에 모인다.
  2. 충돌: 코치의 독단적 전술과 선수 간 감정 갈등이 첫 경기 패배로 폭발한다.
  3. 전환: 강양현이 자신의 방식을 돌아보고, 선수들에게 다시 시작을 요청한다.
  4. 재결합: "같이 할 겁니다"라는 한마디가 팀을 다시 묶는 출발점이 된다.
  5. 완성: 각자의 역할을 받아들이면서 실제 팀플레이가 만들어진다.

이 흐름이 억지스럽지 않은 이유는, 변화의 계기가 외부 사건이 아니라 각자의 내부에서 온다는 점 때문입니다. 다만 이 과정이 후반부에서 좀 빠르게 지나가는 건 아쉬운 부분입니다. 조금 더 천천히 보여줬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지금도 합니다.

경기 장면: 스포츠 영화로서의 완성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스포츠 영화에서 실제 경기 장면이 어색한 경우가 꽤 있는데, 리바운드는 그 부분이 꽤 탄탄합니다. 배우들이 실제 농구 선수처럼 움직입니다. 특히 카메라 워크가 인상적인데, 경기 중에 카메라가 선수 바로 옆에서 따라다니는 핸드헬드(handheld) 촬영 방식을 씁니다. 핸드헬드란 카메라를 삼각대 없이 손으로 들고 찍는 방식으로, 화면이 흔들리면서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생동감을 줍니다.

이 촬영 방식 덕분에 경기 장면에서 숨이 찰 것 같은 느낌이 납니다. 특히 다섯 명이 교체 없이 뛰는 후반부 장면에서는 선수들의 표정만 봐도 지쳐가는 게 전달됩니다. 스코어보드(scoreboard), 즉 경기 점수판 수치보다 얼굴 표정이 먼저 상황을 설명합니다.

중계 방식도 잘 활용됩니다. 캐스터와 해설이 경기 흐름을 설명하면서, 농구를 잘 모르는 관객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데, 농구 규칙을 전혀 몰라도 분위기만으로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스포츠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사람에게도 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만년 벤치 선수 재윤이가 처음으로 코트에 나오는 장면은 짧지만 강하게 남습니다. 통산 출전 기록이 단 한 번도 없는 선수가 처음으로 코트에 서는 순간입니다. 대사도 많지 않고 장면도 길지 않은데, 그 짧은 순간에 감정이 전달됐습니다. 이런 장면이 스포츠 영화의 진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코어가 아니라 사람을 보여주는 것. 영화진흥위원회 역대 박스오피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리바운드는 개봉 당시 상업적으로 크게 흥행하진 못했지만 재개봉을 거치며 꾸준히 관객을 찾고 있습니다. 입소문으로 살아남는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처음 볼 때보다 두 번째가 더 좋게 느껴지는 종류입니다.

장항준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해보면,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서도 리바운드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왕의 남자로 천만 관객을 넘긴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이 오히려 리바운드를 숨은 작품처럼 만든 측면이 있습니다. 기대치가 낮은 상태에서 보면 더 좋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고, 반대로 그 기대치 때문에 더 냉정하게 평가받는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리바운드가 뻔한 영화인가, 아닌가를 두고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겁니다. 저는 뻔한 구조 안에 진심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코치가 완벽한 팀을 만들어 이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수하는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고 실패한 다음에야 진짜 팀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스포츠 영화를 잘 안 본다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합니다. 농구를 몰라도 괜찮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농구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니까요.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zA725POUTLU

댓글

가장 많이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