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틴 라이브스 (동굴 구조, 마취 장면, 실화)
주말에 넷플릭스도 아니고 아마존 프라임에서 뭔가 볼 게 없나 뒤지다가 그냥 썸네일 하나 눌렀습니다. 제목이 숫자랑 영어 조합이라 당연히 범죄 스릴러겠거니 싶었는데, 완전히 다른 장르였습니다. 보고 나서 실제 사건 뉴스까지 찾아보게 된 영화, 서틴 라이브스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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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TT 서틴 라이브스 포스터 |
동굴 구조 영화를 보기 어려운 이유
실화 기반 재난 영화라고 하면 보통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이미 결말 알잖아"라는 반응이거나, "결국 다 살겠지 뭐"라는 반응입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 10분은 그런 마음으로 봤습니다. 태국 배경에 영어 대사와 자막이 섞여 있어서 따라가기도 좀 벅찼고요.
그런데 잠수부들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스쿠버 다이빙(scuba diving, 압축 공기통을 메고 수중에서 호흡하며 잠수하는 방식)을 배경으로 한 장면인데, 화면이 진짜 어둡습니다. 헤드라이트 하나만 켜진 채 좁은 수중 통로를 헤집고 들어가는 장면은 폐소공포증(claustrophobia, 좁고 밀폐된 공간에 있을 때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증상)이 없는 저도 등에 땀이 났습니다. 화려한 CG 없이 어둠과 물소리만으로 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는 게 처음엔 답답하다 싶었는데, 나중엔 오히려 그래서 더 무서웠습니다.
서틴 라이브스는 2018년 태국 치앙라이 탐루앙 동굴에 갇혔던 소년 축구팀 구조 사건을 다룬 영화입니다. 탐루앙 동굴 구조 작전은 당시 전 세계 언론이 실시간으로 중계한 사건으로, 17일 동안 12명의 소년과 코치 1명이 동굴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뉴스로 봤던 기억이 있는 분들도 있을 텐데, 영화로 보면 그 긴장감이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옵니다.
마취 장면이 가장 긴장됐습니다
영화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구조 방식이 결정되는 지점에서입니다. 수중 구조(underwater rescue) 과정에서 아이들이 공황 상태에 빠지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의사이자 베테랑 잠수부인 해리라는 인물이 아이들에게 마취제를 투여한 채 물속을 통과시키는 방법을 택합니다. 마취제 투여량 결정이 핵심인데, 투여량(dosage, 약물을 한 번에 투여하는 양)이 너무 많으면 수중에서 호흡이 멈출 수 있고, 너무 적으면 아이가 물속에서 깨어나는 최악의 상황이 생깁니다.
해리 캐릭터가 그 장면에서 얼마나 긴장하는지 얼굴에 다 보이는데,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습니다. 중간에 마취제를 놓치는 장면에서는 진짜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었고요. 화장실 가려고 일시정지를 눌렀다가 결국 참고 끝까지 봤습니다. 그 정도로 자리를 뜨기가 싫었습니다.
비고 모텐슨과 콜린 파렐이 영국 잠수부 릭과 존을 맡았는데, 두 배우 모두 연기가 과하지 않습니다. 막 감정 폭발하고 영웅적인 대사 날리는 스타일이 아니라, 진짜 실무자처럼 행동합니다. 그게 오히려 현실감을 더해줬습니다. 구조 방법을 두고 군인들과 의견 충돌이 생기는 장면도 그렇습니다. 누가 옳고 그른 게 아니라 각자 자기 방식으로 아이들을 살리려는 건데, 그 충돌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보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확인하면 좋을 포인트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전반부 30분은 상황 설명 위주라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잠수 장면부터 집중하면 됩니다.
- 폐소공포증이 있는 분은 동굴 내부 장면이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 영어와 태국어 대사가 섞여 있어 자막 설정을 꼭 확인하고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 넘기 때문에, 중반부 이후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후반부가 진짜라는 걸 기억하면 버팁니다.
실화라는 걸 알고 나서 달라진 것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실제 사건 뉴스 영상을 찾아봤습니다. 영화의 재현도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구조 작전 중 목숨을 잃은 구조 대원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에서 그 장면이 나올 때는 솔직히 극적인 연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였다는 걸 알고 나서는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산소 공급(oxygen supply, 잠수 중 호흡에 필요한 압축 산소를 공급하는 시스템)이 끊기는 장면도 영화 안에 나옵니다. 동굴 안쪽에 산소통을 미리 배치해두는 방식으로 구조가 진행되는데, 실제 구조 현장에서 BBC가 보도한 내용을 보면 이 산소 배치 작업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 나와 있습니다. 영화는 그 과정을 꽤 정확하게 담아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영국 잠수부들이 주인공이다 보니 태국 현지 주민들이나 아이들 부모의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얕게 처리됩니다. 현지 봉사자들이 물을 퍼내고 식량을 나르는 장면은 나오지만, 그 사람들의 감정까지는 깊이 들어가지 못한 느낌입니다. 이 부분이 영화의 한계라면 한계입니다.
평소에 저는 액션이나 판타지 위주로 봅니다. 이런 잔잔한 실화 영화는 사실 잘 안 찾게 되는 스타일입니다. 근데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화려한 장면 하나 없이 끝까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친구한테 추천하려고 말을 꺼냈다가 "재밌어?"라는 질문에 딱 잘라 답하기가 애매했습니다. 재밌다기보다는, 보고 나서 오래 생각나는 영화입니다.
조용한 주말 오후에 혼자 집에서 보기에 딱 맞는 영화입니다.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이렇게 긴장감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보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실화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특히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아마존 프라임에서 볼 수 있으니, 구독 중이라면 후반부까지 꼭 버텨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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