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사이드 리뷰 (케미, 리메이크, 감동)
평일 야근으로 지쳐 맞이한 주말, 아무 생각 없이 넷플릭스를 뒤적이다가 케빈 하트 얼굴이 박힌 썸네일 하나를 눌렀습니다. '그냥 팝콘이나 먹으면서 킬링타임이나 하자'는 마음이었는데, 두 시간 뒤에는 이불 속에서 혼자 꽤 오래 여운을 씹고 있었습니다. 영화 '업사이드'는 그런 작품입니다. 기대를 낮추고 들어갔다가 예상보다 더 많은 걸 가져가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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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업사이드 공식포스터 |
원작 대비 할리우드 리메이크의 득과 실
'업사이드'는 2011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언터처블: 1%의 우정(The Intouchables)을 원작으로 하는 리메이크 작품입니다. 원작은 칸 영화제 출품작이기도 했고, 전 세계 흥행 수익이 4억 달러를 넘긴 작품이라 건드리기가 쉽지 않은 소재였습니다. 저도 솔직히 처음엔 '굳이 이걸 다시 만들었나' 싶은 의구심이 먼저 들었습니다.
리메이크(remake), 즉 기존에 완성된 작품을 새로운 배경과 배우로 다시 제작하는 방식은 원작 팬에게는 언제나 부담스러운 단어입니다. 특히 원작이 감정선이 섬세하고 완성도가 높을수록 리메이크의 실패 리스크가 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업사이드'는 처음부터 꽤 불리한 조건을 안고 시작한 영화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원작의 묵직하고 잔잔한 감정선은 많이 희석된 것이 사실입니다. 프랑스 원작이 두 사람의 신뢰가 쌓이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줬다면, 이 영화는 웃긴 에피소드 몇 개를 툭툭 던지고 빠르게 관계를 진전시킵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고 부르는, 즉 인물이 경험을 통해 변화해 나가는 서사 구조가 다소 급하게 처리된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델이 처음엔 대충 서명만 받아가려던 전과자였다가 갑자기 필립의 아픔을 누구보다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과정이 조금 비약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할리우드 버전만의 강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언어 유희를 활용한 순간순간의 코미디 타이밍은 원작보다 훨씬 날렵합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대화 템포가 빠르게 치고 빠지는 장면들에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 순간이 꽤 많았습니다.
브라이언 크랜스톤과 케빈 하트의 케미가 이 영화를 살렸다
솔직히 이 영화를 끝까지 잡아두는 힘은 스토리가 아니라 두 배우의 케미(chemistry), 즉 배우 간의 호흡과 조화에서 나옵니다. 브라이언 크랜스톤은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로 워낙 강렬한 이미지가 있는 배우인데, 전신마비 상태의 억만장자 필립을 연기하면서 눈빛과 얼굴 근육만으로 감정의 결을 표현합니다. 몸을 쓸 수 없는 캐릭터의 특성상 표정 연기가 전부인데, 그 제약 안에서 필립의 고집과 외로움과 유머감각을 동시에 담아내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케빈 하트는 제가 좋아하는 코미디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는 평소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른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에너지를 극도로 끌어올리는 시끄러운 캐릭터 대신 톤을 한 단계 내린 연기를 선택했습니다. 진지한 감정 장면에서도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설득력 있게 처리해서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케미가 가장 빛나는 장면들을 꼽아보면 이렇습니다.
- 밤중에 필립의 호흡이 막히는 응급 상황에서 델이 당황하지 않고 핫도그 가게로 데려가는 장면. 위기를 일상으로 덮어버리는 델의 방식이 필립에게 진짜 숨통을 틔워줍니다.
- 페라리 차고 앞에서 "장애인 차량 쓰기 싫다"며 당당하게 스포츠카에 올라타는 장면. 불쌍하게 바라보지 않는 델의 시선이 오히려 필립을 그냥 한 인간으로 대하는 방식입니다.
- 뮤지컬 관람 중 필립의 드립에 델이 빵 터지는 장면. 부자와 전과자라는 계층 차이가 순간 완전히 지워집니다.
특히 첫 번째 장면은 제게도 꽤 크게 와닿았습니다. 요즘 공부 스트레스로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 같은 날들이 많았는데, 저도 누군가가 "그냥 핫도그나 먹으러 가자"고 끌어줬으면 할 때가 있거든요.
패러글라이딩 장면이 주는 감동의 구조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마지막 패러글라이딩(paragliding) 장면입니다. 패러글라이딩이란 낙하산과 유사한 날개를 이용해 상승 기류를 타고 활공하는 스카이 스포츠를 말합니다. 영화 속에서 이 장면이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가 있습니다. 필립은 과거 아내와 함께 패러글라이딩을 즐겼는데, 낙뢰를 맞은 그 사고로 아내를 잃었습니다. 그에게 하늘을 나는 행위는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자 동시에 모든 것을 잃은 순간과 연결된 감각입니다.
제가 고소공포증이 약간 있어서, 화면으로만 보는데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필립이 하늘 위에서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보는 순간, 그 두려움보다 시원한 감각이 더 크게 밀려왔습니다. 오랫동안 '살아있는 것'과 '존재하는 것' 사이 어딘가에 머물던 사람이 비로소 다시 살아 돌아오는 느낌이랄까요.
이 장면이 감동적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정서적 해소(catharsis)', 즉 억눌려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방출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때문입니다. 카타르시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효과를 설명하며 사용한 개념으로, 관객이 등장인물의 감정을 통해 대리 해소를 경험하는 것을 뜻합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카타르시스 항목에서도 이 개념이 영화와 문학 전반에 걸쳐 어떻게 적용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정서적 해소의 순간을 촉매한 게 델의 존재라는 점이 이 영화가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동정이 아니라 편견 없는 시선,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는 태도가 필립에게는 진짜 치료였다는 것입니다.
원작 '언터처블'을 이미 본 분이라면 깊이감 면에서 다소 아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두 작품 모두 접하지 않은 분이라면, '업사이드'는 주말 오후에 꽤 괜찮은 선택입니다. 원작까지 찾아보고 싶어지는 욕심이 생긴다면 더 좋은 관람이 될 것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실제로 단톡방에 추천 메시지를 올렸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습니다. 너무 큰 기대만 안 하고 가볍게 재생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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