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커버넌트 (매복작전, 탈출, 비자문제)

 

오랜만에 넷플릭스 켰다가 예상치 못한 영화에 두 시간 넘게 꼼짝 못 한 경험, 혹시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인 제이크 질렌할 나온다길래 틀었는데, 끝나고 한참 동안 엔딩 크레딧만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가이 리치 감독의 2024년작 <더 커버넌트>는 전쟁 영화의 탈을 쓴, 두 남자의 묵직한 약속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더 커버넌트(2024)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전쟁영화 공식포스터
더 커버넌트(2024) 공식포스터


매복작전: 통역사 아흐메드는 왜 달랐나

영화 전반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IED 제조 거점을 탐색하는 특수부대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IED란 Improvised Explosive Device, 즉 급조폭발물을 뜻합니다. 도로 곳곳에 묻어두거나 위장해서 차량이나 병력을 노리는 방식으로, 이 영화에서 부대원들이 맡은 임무가 바로 이 IED 제조 거점을 찾아내 무력화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새로 합류한 통역사 아흐메드가 눈길을 끕니다. 처음에는 그냥 돈 때문에 위험한 일을 감수하는 인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 과거가 좀 복잡합니다. 헤로인 밀매에 연루된 전력도 있고, 탈레반과 일한 적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러면서도 미군 편에 서서 일하는 이유는 딱 하나, 탈레반이 그의 아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복수심과 생계가 뒤섞인 눈빛이 살아있는 인물입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들을 보면서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조연 통역사로 소비될 것 같았는데, 아흐메드는 팀이 갈림길에 섰을 때 직감으로 우회를 제안하고, 그 판단이 결국 맞아떨어집니다. 탈레반 매복을 사전에 눈치챈 겁니다. 이 한 장면이 후반부 이야기 전체를 짊어지는 무게를 만들어냅니다.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아흐메드의 판단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탈출: 120km, 둘만 남았을 때

영화의 중반부는 단연 압권입니다. 무기 은닉처를 급습하고 폭발물을 설치한 뒤 철수하는 과정에서 매복 공격이 터지고, 부대원 대부분이 전사합니다. 결국 존 킨리와 아흐메드, 둘만 살아남아 120km 떨어진 본부까지 살아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여기서 감독은 신파를 철저히 배제합니다. 구구절절한 대사도, 눈물도 없습니다. 총상을 입어 거의 의식을 잃은 존을 수레에 싣고, 아흐메드가 가파른 흙길을 밀고 오르는 장면만 묵묵히 보여줍니다. 저도 이 장면에서 폰을 완전히 내려놨습니다.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아흐메드가 미끄러질 때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습니다.

이 생존 파트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두면 좋은 배경이 있습니다. 영화 속 아프가니스탄 현지 협력자들, 특히 통역사는 HIG(Host Intelligence Guide) 혹은 통상 "현지 협력자"로 불립니다. 이들은 미군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지만, 법적으로 군인 신분이 아닙니다. 즉, 전투 중 사망해도 전쟁 영웅으로 인정받거나 그 가족이 보호받는 보장이 거의 없습니다. 영화는 이 현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만약 저 상황에서 제가 아흐메드였다면 어땠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이미 목숨이 위험한데 남을 끌고 도망가는 선택은 본능에 반하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그 장면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비자문제: 영웅을 소모품으로 만드는 시스템

후반부는 전쟁터보다 어떻게 보면 더 답답합니다. 가까스로 미국에 돌아온 존 킨리는 훈장도 받고 영웅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살린 아흐메드는 탈레반 수배자 명단에 오른 채 가족과 함께 지하에 숨어 지내고 있습니다. 비자는 없고, 현상금은 걸려 있습니다.

존이 아흐메드의 SIV(Special Immigrant Visa) 발급을 위해 군 내부를 돌아다니는 장면은 실제로 미국에서 논란이 됐던 문제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SIV란 미군 작전을 도운 외국 협력자들에게 미국 입국 자격을 부여하는 특별 이민 비자입니다. 그런데 이 비자 처리가 수년씩 지연되거나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경우가 실제로 많았습니다. 절차는 존재하지만 그 복잡성과 처리 속도는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존이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괴로워하는 장면, 제 경험상 이런 장면이 진짜 전쟁 영화와 오락 전쟁 영화를 가르는 기준점입니다. 단순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전쟁이나 극심한 충격 이후 나타나는 심리적 후유증)의 묘사가 아니라, 살아 돌아온 것 자체가 죄가 되어버린 사람의 얼굴이 거기 있었습니다.

이 비자문제 파트에서 영화가 말하려는 바는 꽤 분명합니다. 국가 시스템이 개인에게 요구한 희생과, 국가가 그 개인에게 돌려주는 것 사이의 격차입니다. 아흐메드를 소모품처럼 버린 것은 특정 악당이 아니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행정 절차라는 점이 더 씁쓸합니다.

가이 리치의 연출, 어디까지 믿어도 될까

솔직히 처음에 감독 이름 보고 반신반의했습니다. 가이 리치라면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나 <스내치> 같은 유쾌하고 빠른 범죄물의 감독 아닙니까. 제가 직접 봤을 때는, 이 영화에서 그가 자신의 장기를 꽤 영리하게 활용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연출 요소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비선형 편집: 장면 전환이 빠르고 시간 순서를 비틀어 긴장감을 끌어올립니다. 전반부 매복 장면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2. 음악 활용: 웅장한 스코어를 긴장 고조 구간에 정확히 배치해 감정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깁니다.
  3. 핸드헬드 카메라: 생존 파트에서 흔들리는 카메라가 현장감을 극대화합니다. 관객도 같이 산을 오르는 느낌입니다.
  4. 절제된 대사: 아흐메드와 존 사이에 불필요한 감정 대화가 거의 없습니다. 행동이 관계를 설명합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마지막 댐 장면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공중 지원은 솔직히 헐리우드식 치트키처럼 느껴졌습니다. 앞에서 쌓아온 묵직한 리얼리티가 조금 깎이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이 감독이 장르를 바꿔도 '사람 사이의 긴장감'을 뽑아내는 본능은 여전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엔딩 크레딧에 실제 미군 병사들과 아프간 통역사들의 사진이 올라오는 순간, 이게 그냥 픽션이 아니라는 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혹시 실제 SIV 문제나 아프간 협력자들의 현황이 궁금하신 분은 S뉴욕타임즈의 관련보도도 함께 읽어보시면 영화가 훨씬 다르게 보일 겁니다.

시험 공부 잠깐 쉬려다 인생 영화를 만났습니다. <더 커버넌트>는 전쟁의 화려함 대신 '빚'과 '의리'라는 무거운 주제를 들고 옵니다. 화면이 꺼진 뒤에도 한참 생각이 이어지는 영화를 찾고 계신다면, 지금 당장 재생 버튼을 눌러보시길 권합니다. 혹시 비슷한 결의 전쟁 영화를 더 찾고 계신다면, <1917>이나 <론 서바이버>도 같이 보시면 비교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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